소설 카르멘의 탄생부터 오페라 카르멘에 숨겨진 비화

오페라 카르멘의 작곡가는 프랑스 작곡가 조르쥬 비제(Georges Bizet)이다. 대본은 프랑스 소설가이자 역사가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e)의 소설 ‘카르멘’의 동명 소설을 앙리 메이야크(Henri Meilhac)와 뤼도비크 알레비(Ludovic Halévy)가 합작했다. 4막으로 구성되었으며 기승전결의 기본구성을 취하고 있다.

비제의 원작에는 레치타티보(recitacivo, 오페라 진행에 사용되는 대화체 노래, 노래보다는 대사에 중점을 두고 주인공의 상황설명이나 이야기를 불규칙한 음높이로 전개해 나가는 부분)가 없었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이하 메리메)는 19세기 프랑스 유명작가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크롬웰’, ‘클라라 가쥘’ 희곡집, ‘마테오 팔코네’, ‘타망고’, ‘에트루리아의 항아리’, ‘콜롬바’ 등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카르멘’이 으뜸으로 손꼽힌다. 메리메는 스탕달이나 투르게네프와 같은 대작가들과 교제하며 푸시킨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여러 언어에 능통한 메리메의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고고학 분야였다. 1834년부터 1860년까지 26년 동안 문화재 총감독관으로 일하며 프랑스의 문화재 복원에 힘쓰기도 했다. 임기동안 프랑스 국내와 코르시카,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각지를 순방했는데, 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소설 ‘카르멘’이다.

조르쥬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1845년 초연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햇다. 하층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갈등을 빚어내는 비극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소재와 스페인 세비야의 낯선 배경이 당시에는 큰 파격이었던 것이다. 오페라의 서사가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한 관객들은 비난을 퍼붓고 무대에 토마토를 던지기도 했다. 1875년 3월 3일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한 카르멘도 흥행에 실패했다. 비평가들의 혹평과 카르멘의 흥행실패에 조르쥬 비제의 정신적 타격이 컸다는 후담도 있다. 그러나 초연 이후부터 비제가 숨을 거두기 전 3개월 동안 33회 상연되며 인기가 높아져 갔다. 비제가 죽기 직전에서야 작품의 진가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대중적으로 상연되는 그랜드 오페라 풍의 오페라 카르멘은 비제의 동료 작곡가인 에르네스트 기로(Ernest Guiraud)가 후에 가필한 것이다. 초연은 1875년 10월 빈에서 행해졌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정작 조르쥬 비제 본인은 오페라 카르멘의 오랜 성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으나 그의 죽음이후 1904년 파리에서만 1000회 이상의 상연을 기록했다.

오페라 카르멘은 이후 전 세계의 극장에서 상연되는 최고의 인기 오페라가 되었다. 비제가 당시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메리메의 원작을 다룬 것은 이 소설에 담긴 풍부한 지방색과 특이한 소재가 비제의 취향에 맞아 떨어지기도 했으나 역으로 오페라의 성공과 조르쥬 비제 최대의 오페라 걸작이라는 명성을 거둔 주요인이기도 하다.